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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019년 4월 [ 2019.04.30 ]

[뉴스재팬=포사단필]

1.
4월 1일, 동아일보는 “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는 제하의 기획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4월 2일, 주요 일간지는 지난 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1,682조 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6조 9천억 원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해 증가분 중 94조 1,000억 원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의 증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2.
5년짜리 권력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만년불패 철밥통 관료조직의 위세와¹⁾ 그들이 세상을 뜰 때까지 먹여 살리기 위한 연금 충당부채의 국민 부담이 보여주는 선명한 대비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규제 타파’라는 단어에 알레르기적 거부 반응을 보이며 본능적으로 ‘규제’를 풀고 싶어 하지 않는²⁾ 강고한 관료집단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나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3.
한국에서 관료들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나라의 관료들은 IMF 사태 초래라는 국가적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규제의 고삐를 늦추려 하지 않고 있다. … 관료조직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되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최대 ‘저효율•고비용 집단’은 다름 아닌 관료집단이기 때문이다.”³⁾
행정고시 합격 후 30여 년 동안 중앙 정부 부처 요직을 거치면서 얼마 전까지 고위 공직자를 지낸 A씨는 이렇게 ‘참회’했다.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외쳤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던 주제를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왜? 책임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공무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아닌 공무원 조직과 그 뒤에 있는 규제 시스템을 위해 산 건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⁴⁾
인허가 관련하여 “착착 서류를 잘 내줘봐야 이득 되는 것 없고, 늦게 내줘도 손해 보는 게 없는데 서둘러 처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에 하나 잘못되면 평생 안정직장이 흔들릴 수도 있다. 게다가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농간을 부리면 현직 혹은 퇴직 후 이권으로 직결될 수도 있다. 더 큰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규제를 풀지 않는 게 공무원으로서는 합리적인 행동이다.”⁵⁾

4.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했다.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공무원 연금을 지급함은 곧 국가가 국민에게 바가지를 씌운 거다. 유리지갑의 노동자들도,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에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입씨름하는 주부들도 나라의 바가지 씌우기에는 별로 말이 없다. 달리 말하면 국가는 국민을 봉으로 알고 바가지를 씌울 만하니까 씌웠고, 국민의 의식은 국가가 우습게 여길 정도의 수준이니 바가지 써도 싸다.

5.
선거에서도 동일한 수준이 확인된다. C급 유권자가 선출한 D급 국회의원이 여의도 모여 E급 의회를 만든다. 한국 대의정치의 CDE법칙이다.
제 손으로 뽑은 다음 D급이라고 욕하면서도 다음에 또 D급을 뽑는 C급 유권자나 바가지를 써도 무심히 넘기는 국민이나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관료조직과 관련 이익단체에 포획당한 나라가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는 민초를 수탈해서 특정 집단을 살찌우는 작태가 D급 선출에 따라 C급이 되받는 대표적 부메랑이다.

6.
삿대질하면서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걸핏하면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고 되 뇌이지만, 나 또한 우리 사회가 이 꼴이 되도록 몰고 간 무심한 공범자였음을 시인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빨려들듯 스마트폰에 매달릴 때 나와 아내가 집안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점검했어야 한다. 자라면서 생각하기보다는 외우기에 열중할 때 내 자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확인했어야 한다. 대학생인 자식이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 어른에게 인사할 줄도 모를 때 나는 자식에게 기본적인 예의조차 가르치지 못했음을 반성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확인도, 점검도, 반성도 하지 않았고, 그저 자식의 점수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안팎으로 무심하여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했고,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는 간디의 교훈도 알아듣지 못했다.

7.
이제는 정말로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바쁘기도 하고 나서보았자 미운털만 박힐 터이니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 사회를 상식이 존중되는 사회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는 한참 지났다. 그래봤자 나만 등신 된다고 침묵하거나 백년하청이라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내가 분노한 한 시민으로서, 각성한 한 유권자로서 나설 때가 아닌가 한다. 나는 생활 주변에서 작은 변화부터 모색하자는 움직임을 외면하면서 남들에게 나서주기를 떠넘김은 국민으로서 지속적으로 바가지를 뒤집어써도 괜찮다는 몰지각한 행태요, 유권자로서 앞으로도 하여간에 D급을 선출하겠다는 자해행위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조헌주는 “한국 관료제의 원조, 일본 관료조직 대해부”에서 대한민국 관료들의 위세를 ‘國破官僚在’라고 지적했다(http//blog.daum.net/gangseo/4023008). 나라가 망했어도 그 들은 잘 먹고 잘 살더라는 얘기다. 수십 만 공시생들이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하는 이유를 알 만하고, 민주노총의 강력한 투쟁 이유도 알 만하다.
2) 백태견, 『관료망국론과 재벌신화의 붕괴』 (살림, 1997), p.101.
3) 위 책, pp.107-115.
4) 동아일보, 2019. 4.1.
이 기사는 A씨의 반성을 ‘참회’라고 썼다. 참회라기보다는 속 보이는 변명으로 보인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규제를 강력히 옹호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 어느 날 갑작스럽게 무엇인 가를 깨달은 양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두 얼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5) 김광현, “공무원의 고질병,” 동아일보, 2019. 4.11.
일본 중앙 정부에서 인허가권을 가장 많이 쥔 부처는 運輸省인데, 인허가에서 일관하고 있 는 사상은 수급조정(需給調整)이다. 수요와 공급을 균형 시키고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동시 에 최적의 상태에서 소비자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사고방식이다(屋山太郞 著, 金寅洙 譯, 『관료망국론』 比峰出版社, 1994, p.67). 25년 전 일본의 얘기인데, 아주 근사 한 명분이고, 우리도 이날까지 참 많이 들어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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